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어김없이 제 삶 가운데 들어와 동행해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매 주일 저녁이 되면, 저는 다음날 출근을 위해 혼자 가평으로 내려갑니다. 이런 반복된 생활이 벌써 2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나이는 벌써 마흔이 되었으며 아직까지 미혼인 상황이니 지방근무로 인해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려울 거라는 불안함이 어쩌면 저를 힘들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이 나이가 되도록 연애는 왜 못하고 있으며 결혼은 언제 할 것이냐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들으면,"이게 다 두 분의 기도가 부족한 탓입니다."라고 말을 하며 한때는 저 역시도 이 나이까지 그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답답함에서 나아가 죄책감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저를 우리교회에서 ‘요셉청년부’라는 이름으로 ‘장년’이 아닌 ‘청년’으로서 예배의 자리를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고, 특별히 올 한해에는 두 가지 인도하심으로 연애와 결혼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예배의 자리에 작은 변화를 만들어주신 주님을 고백하려 합니다.
먼저는 해외선교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만들어주신 부분입니다.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저는 그동안 교회의 ‘해외단기선교’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해왔습니다. 짧으면 6일 길어야 3주가 채 되지 않는 그 시간이 과연 진짜 선교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시간으로 무슨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청년부 소그룹 모임을 통해 만난 한 청년으로 부터 해외선교를 다녀오며 느꼈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으며, 선교는 제가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고 내가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직계존비속의 사망이 아닌 이상, 특정 직원이 5일 이상 기간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지금의 근무지에서, 주님께서는 해외 선교를 위해 6일의 연차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주셨고, 그렇게 저는 올 해 2월 ‘캄보디아’로 부르심을 받아 선교일정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감사하게도 주님께서는 저를 사용해주셨고, 또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촬영 담당자로 섬기며 렌즈를 통해 캄보디아 아이들과 지역 주민들의 간절하고도 순수한 예배드림의 모습을 보았던 시간은 제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낡고 낡은 신발을 신으면서도 그 어떤 불평불만 하나 없이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 예배당 안 십자가 하나 달랑 걸린 곳에서 너무나도 천진난만하게 율동을 하며 예배를 드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고, 렌즈를 통해 찬양 멜로디도 잘 모르면서 목소리 높여 찬양을 드리고 간절히 기도드리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나의 예배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형식적으로 드린 예배였는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게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시간이 날수록 제 부족함을 아시고 채워주시는 은혜에 감사하지 못한 채, 모든 일은 내 힘으로 당연히 이뤄진 것이라 생각하며 나의 의를 드러내기만 바빴던 제 예배의 자리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제는 찬양 예배를 드릴 때 춤을 추며 예배를 드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비행기로 오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짧게는 4일도 채 되지 않는 그런 선교가 무슨 선교가 될 수 있겠냐며 스스로 선교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그 선교를 통해, 주님께서는 예배를 드리는 제 모습을 바꿔주신 계기가 된 셈입니다.
그렇게 상반기에 해외선교를 통해 작은 변화를 만들어주셨다면, 하반기에는 국내선교를 통해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올해 8월에 다녀온 ‘태백/삼척 단기선교’입니다.
해외선교를 통해 받은 은혜를 가지고, 그 어느 해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리며 축호전도에 참여했던 시간, 무더운 날씨에도 팀원들과 서로 의지하며 교회 건물 보수에 힘썼던 시간 등 많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저는 주일 예배시간에 만난 한 모자(母子)의 예배드림을 통해 제 예배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일찍이 예배 시작 전부터 50대쯤으로 보이는 아드님께서, 거동이 불편해지고 감각이 둔해지신 노모를 모시고 높은 곳에 있는 예배당으로 힘겹게 들어오시는 모습.
교회 선풍기도 잘 안돌아가는 상황인지라 이쯤 되면 냉수를 찾거나 얼굴을 찡그릴 법도 한데, 두 분 모두 맨 앞자리에 앉으셔서는 조용히 도착 기도를 드리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저를 포함한 우리교회 청년들이 준비한 – 글씨도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 예배 주보와 찬양악보를 보고 계셨습니다. 예배당에 급히 도착해서 숨을 헐떡이며 예배드림을 시작하는 제 모습과는 너무 다른 습이셨지요.
그렇게 예배 시작과 동시에 함께 찬양을 부르는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우리 청년들이 준비한 찬양이 빠르고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악보 글씨도 작아 두 분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죄송한 마음으로 찬양을 계속 이어가던 그 순간, 잠시 찬양을 부르는 제 입술이 갑자기 부끄러워졌습니다. 손가락으로
찬양악보 속 가사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찬양 가사를 함께 읊조리시는 한 모자(母子)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음정과 박자가 맞지 않았지만 찬양을 부르시는 두 분의 모습은 그 어떤 찬양의 모습보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순간, 예배당에서 그저 큰 목소리로만 찬양 부르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주님이 높여지는 찬양이 아닌 제가 높아지는 찬양이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예배는 이렇게 드려야 한다.”고 보여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후 다시 안양으로 돌아와 드리는 예배부터 변화를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전심으로 예배를 드리자.’, ‘내가 높아지는 예배가 아닌 주님께서 높여지시는 예배를 드리자.’, ‘다윗처럼 춤을 추며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를 드리자.’라는 너무나도 기본적이지만 반드시 실천해야하는 결심이 생겼고 그런 마음으로 매 예배시간을 주님 앞에 드리고 있습니다.
그럼 ‘연애’와 ‘결혼’에 대한 제 삶의 걱정은 잊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두 가지 일로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있습니다. 매 주일 저녁마다 지방 근무지로 내려가도 이제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보단 ‘기대’와 ‘감사’를 먼저 하게 됩니다. ‘연’애와 ‘결’혼 모두
‘주님과 연.결.’하며 살다보면, 제 예배의 자리를 변화시켜 주신 주님의 이끄심 가운데 두 가지 모두 주님의 때에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오늘도 어김없이 제 삶 가운데 들어와 동행해주시는 주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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